살인자의 기억법

아무래도 성남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회사에 들고 드나들다가 문제가 생길수도 있어, 회사 휴게실에 있는 책들을 주로 읽고 있다. 새빨간 책 등이 눈길을 끌어서 꺼내들었는데 어디선가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는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라 바로 대출신청을 했다.

얼마전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김유정 문학상 수상집’들을 읽고 그 난해함에 크게 데어서 현대 한국 소설가들의 책에는 손대기가 꺼려졌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술술 읽혀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그 쉽게 술술 읽힌 앞 부분이 사람을 얼마나 혼란 스럽게 하는지, 막판에 가서는 정신줄을 붙잡고 진실이 무엇인지, 그 장면에서 그럼 주인공이 실제로 대화를 나눈 것은 누구인지, 실제로 본 것은 무엇인지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요 최근 기억력이 많이 감퇴해서 걱정이 많은 가운데, 알츠하이머를 주제로 삼은 책을 읽으니 그 자체로도 기분이 복잡했다. 아마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저자가 주인공의 과거를 살인자로 설정한 것이겠지만, 너무 가볍게 살인을 말하는 책이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니체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꾸며진 생각일 수도 있다라는 결론만 내리고 내 생각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마무리해야겠다.

기사단장 죽이기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2018년 마지막 책이자, 2019년 첫 책.

하루키의 장편 소설은 흥미롭게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지간해서는 신작이 나왔다고 해도 읽을 시도를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기사단장 죽이기’는 난징대학살이라는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언급하여 일본 우익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고 흥미가 생겨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마침 회사 도서관에 책이 있어 빌려다가 출퇴근 시간에 보았는데, 상당히 미스터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보는 듯, 묘사가 굉장했다.

이 두꺼운 두 권의 책을 관통하는 그림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기사단장 죽이기’. 주인공이 기사단장에게 칼을 꽂을 때, 그의 눈에 보인 환영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그로 하여금 평생의 죄책감을 안고 가게끔 학살을 지시한 상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해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보여주고, 이데아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아마다 도모히코의 눈 앞에서 ‘무언가’의 환영이 죽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게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의가 아니어도 그렇게 타인을 학살하라는 지시를 받고 괴로워하며 명을 따랐어야 했던 사람은 평생의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가는데, 그 지시를 내렸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일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너무 확대해석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멘시키라는 인물의 미스터리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풀리지 않았지만, 주인공을 따라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속에 함께 들어갔다 나온 듯한 기분이 드는 몰입감 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