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7401-1
약 110해의 노벨상 수상자 중에, 2008년 수상자들은 나에게 유독 애틋한데, 그 해에 스톡홀름에 교환학생을 가 있었던 덕분에 수상자 기조 강연을 직접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힉스입자의 발견(물리)/GFP(화학) 모두 CERN에 구경도 갔다왔었고, URP(undergradudate research program)의 주제가 Photoactive Yellow Protein의 Mutant의 발광특성분석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수상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반가운 주제들이었다. 게다가 Martin Charfie 교수님한테는 싸인도 직접 받을 수 있었고. 고맙게도 양자방 사람들이 노벨상기념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것을 허락해줘서, 2008년 물리와 화학 포스터는 상당히 오랫동안 화학과 1119호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랩 정리를 하면서 떼어와서 고이 접어 보물상자에 넣어놓았다. 그래서인지, 노벨상 수상후 세상을 떠나신 많은 교수님들이 계시지만, Nambu교수님, Tsien교수님, Shimonura교수님의 부고는 왠지 더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Shimomura교수님 강연을 들을 때,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히 남는 것이 ‘아들 손자 며느리, 온 가족이 뜰채를 들고 해파리를 잡으러 가던 사진’이다. 손자는 할아버지랑 해파리를 잡으러 간다고 들떴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그게 참 와 닿았던것이 노벨상을 받을만큼 한 분야에 몰두한 과학자가 연구에만 외곬수로 파고든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도 좋은 시간을 보내며 연구를 하셨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과 가정, 모두를 양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당시에도 참 보기 좋게 보였던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온 가족이 Shimomura교수님의 연구를 돕기 위해 (정말 말 그대로!) 팔 걷고 나섰다는 것인데, 상대론적 양자화학을 전공한 내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학문을 하면서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특히 비 전공자인 지인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Shimomura교수님의 연구도, 비전공자인 가족이 보기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당장의 효용도, 성과도 없어보였을텐데 그들의 지지를 든든하게 받으며 연구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핑계일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이론적인 접근에는 너무나 큰 매력을 느끼지만, 내 재능이 미천하고, 학문자체가 시대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분야인 탓에 내려놓아야 했던 나에게는, 본인이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한 연구주제를 평생 할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 역시 너무나 부러웠다.
교수님 당신의 삶을 스스로는 어떻게 회고하며 돌아가셨을지는 모르겠으나, 상대론적 양자화학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가슴 한켠이 아린 나에게는, 그 분의 연구자로서의 삶이 참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