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비 드러머??

다음 드럼곡을 정하다가 선생님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Toto의  Falling in between 어떻냐고 말씀드리고는 동영상을 보여드렸더니, 빵 터지심.

개인적으로는 이런 오묘한 멜로디를 좋아해서 Toto의 다른 곡들보다도  Falling in between을 좋아하는데, 위의 2007년 파리 라이브 영상의 드럼을 친 Simmon Phillips는 사지절단 드럼으로 너무 유명하신 분이라고 ㅋㅋ 왼손 오른손의 구분이 없는 자유로운 드럼. 부럽다…ㅠㅠ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드럼 칠 수 있었으면.

사실 먼저 보여드린 영상은 저 영상이 아니고 Nathan East가 베이스 세션으로 참여한 투어영상이었다. 어? Nathan East네? 하시면서 얘기를 해주셨는데, 예전에 선생님 친구분이 일하는 공연장에 Nathan East가 속한 팀 저녁 공연이 잡혔더란다. Nathan East가 아침에 물병을 들고 왔길래 아 공연 연습하러 왔나보나 했는데, 나갔다가 저녁되서 와보니까 사람은 처음에 앉은 자세 그대로인데 앞에 물병만 십 수개가 늘어나 있더라고. ㄷㄷㄷ 실력좋은 베이시스트가 그냥 실력있는게 아니구나.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자만하지 않고 저 정도로 집중을 하는데. Nathan East 얘기를 듣고 생각하는데 뭔가가 가슴에 탁. 저렇게 움직이지도 않고 집중을 할 만큼 내가 내 일에 집중을 했던가도 싶고, 저 정도로 몰두할만큼 내가 하는 일이 나한테는 소중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Simmon Phillps도  Nathan East도 멋지고 부럽다. 반의 반만이라도 비슷하게 칠 수 있었으면. 근데 이 두 분도 참 멋지지만 너무 완벽하단 느낌이라 실력면에서는 닮고 싶지만, 역시 내가 꿈꾸는 모습은 이런거?

1997년 독일에서 있었던, Charly Antolini, Pete York, Huub Janssen의 드럼배틀. 60대의 연륜이 묻어난다. 저렇게 연주하면서 장난칠 수 있는 여유라니 ㅋㅋ 흥겨워 보여! 나도 60대쯤 되었을 때 내 분야에 대한 주제로 동료들이랑 저렇게 신나게 토론 배틀 할 수 있었으면 싶기도 하고, 드럼도 저 정도 쳤으면..? 싶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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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최고의 영화라고 손 꼽는 영화는 늘

Good will hunting 이었는데

문답을 하면서 감명 깊은 영화 top3에 올리던 그 때 보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조금씩 더 돌아보게 되면서

내용이 더 깊게 다가온다.

이상형의 기준을 바꿔야겠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끔 해 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인정해주고, 함께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고, 또 나눠주는 사람

지혜롭고 성실한 사람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사람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

잘 웃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사람

혼자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지 않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꿈이 있는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을 품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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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에 꿈을 꾸었는데, 너무나 이상형이 아닌 사람과 결혼을 했다. 사실 그 이상형의 기준은 외모에 대한 비중이 제일 컸는데, 신혼집에 이미 가구랑 모든 것은 다 들여놨는데 너무 그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엉엉 울고 엄마를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다들 너무 내 이상형이 아닌 걸 아니까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안 쓰러워 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집에서 미안해하면서 어쩔줄 몰라하던 그 이상형이 아닌 사람의 표정도 생각난다. 그랬는데, 그 꿈을 꾸고 몇 일 뒤에 너무나 외모가 이상형이던 사람을 만나 가깝게 지냈었고, 결과적으로는 마음이 상했고, 이전에 가졌던 약간은 달콤했을지 몰랐을 기억도 다시 다 무너져내렸다. 외모도, 웃는 얼굴도, 성실함도, 꿈도 다 내가 바라던 이상형의 모습이었지만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건 참 가슴아픈 일이었다. 이상형의 기준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에 너무 맞춰져있지 않았던가 싶다. 세상의 눈과는 관계없이 내가 바라봐서 좋고 편안한 사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 좀 더 스스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맞춰 이상형의 기준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니 나도 누군가에게는 저런 모습이 되도록 늘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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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꾸 누군가를 좋아하게되면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데, 내 기준과 내 본연의 모습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만날 수 있도록 내 마음도 많이 단련해야겠다. 스스로가 중요하다는 것을 좀 더 마음에 새길 수 있길.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나무를 심는다

어제 방 정리를 하다가 이불 빨래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불 겉커버를 열어보니 안에서 오리털 이불 충전재가 정신없이 다 빠져나와 있었다. 십 수년을 따뜻하게 지켜준, 교환학생 갈 때도 들고갔던 내가 정말 아끼던 이불이라 구멍이 나면 천 테이프를 붙여가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비닐 백에 넣기 시작했다. 이런 오랜 친구를 아무 생각없이 버리면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마음속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는데, 근 20년을 썼으면 이젠 오리털 이불도 그만 쉬고 싶을 것인데 나는 맨날 ‘벽에 똥칠하기 전에 이 세상 떠야지’ 하면서 진즉 이 꼴이 난 오리털 이불에게는 그것을 허하지 않았다고, 매번 이불 커버를 빨 때마다 오리털과의 전쟁을 해야했는데 이젠 손 쉽게 빨래를 할 수 있으니 더 깔끔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박사 학위도 땄으니 이제 지난 과거는 보내고 새 출발을 해야한다고 되뇌이며 이불을 정리했는데도 닳고닳은 이불보를 보니 또 다시 마음이 약해져서 쓰레기 통으로 들고가는 그 3미터 동안도 버리지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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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북유럽에 있다’라는 책에 있던 문장인데,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나무를 심는다’는 말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책에서도 말했듯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해지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심어준 나무 덕분이며 그 심어준 나무들을 잘 가꾸는 것은 마음을 받은 본인의 소임이기도 하다. 작년 말부터 마음이 많이 지쳐서 학위를 마무리하던 마지막 한 학기는 정말 가깝다고 여기는, 그간의 박사과정에서 지칠때 마지막까지 힘이 되어주었던 소수의 몇 몇 사람들에게만 기대어있었다. 비유하자면, 사람들이 내뱉은 상처주는 말들은 가시덤불 씨앗이 되어 뿌려졌었고 따뜻한 말들은 아름드리 나무가 될 씨앗이었는데 마음 관리를 너무 못해서 가시덤불은 정신없이 자라고 나무들은 관리를 못받고 막 자라 빛이 제대로 들지를 못해 비실비실 죽어가는 형상이었다. 그 와중에 그 소수의 사람들이 심은 나무는 마음 숲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오아시스 주위에 둘러 자란 나무들이었고 나는 그 작은 숲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그런 느낌. 잠시만 여기 숨어있다가 급한 불을 끄고나면 가시덤불 정리를 하고, 가지치기를 해서 나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만들자고 속으로 다짐을 했었는데 막상 급한불을 끄고나서 빼꼼히 오아시스 밖을 내다보니 저 가시덤불들을 어떻게 쳐내야 하나, 저 밖으로 어떻게 나가나 하는 생각에 두렵고 아찔해져서 펑펑 울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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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듯도 다른듯도 싶지만, 오리털 이불은 관리하는데 따른 어려움 때문에 빨래를 자주 못해 그에 따른 문제가 분명 있었을텐데 어려서부터 함께하면서 많은 추억이 깃들어있다며 내가 늘 그냥 넘어갔던 것이고 가시덤불들은 분명히 나한테 상처를 주는데 어쨌든 이것도 추억이라며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계속 짊어지고 살았던게 아닌가 싶다. 실은 마음을 다잡은지 한 달이 더 넘은 지금도 가시덤불을 제대로 쳐내지를 못하고 있어서 여전히 마음이 어지럽다. 가시덤불을 어느 정도는 쳐내야 아름드리 나무들을 제대로 길러낼 공간을 만들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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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털 이불 없이 얇은 솜이불만 덮고 잔 어제는 역시나 으슬으슬하고 추웠고 아침이 되어 지나가면서 본 쓰레기통에 오리털 이불이 담겨있던 비닐봉지가 없는 것을 보니 가슴이 괜히 아렸다. 새로운 오리털 이불을 사기 전 까지는 얇아져 버린 이불에 괜한 허함을 많이 느끼기도 하겠지만 곧 적응을 하겠지. 그리고 좀 더 빨래도 자주할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푹신한 오리털 이불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시덤불을 쳐낸 자리도 쳐내는 순간은 주저하게 되고 쳐내고 나서는 분명히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내 아름드리 나무들이 잘 자라 더 건강한 숲을 이루겠지. 사람들이 나눠준 좋은 나무의 씨앗만 남겨 좀 더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