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사-2월호

2018/8/27~9/21프랑스길799km

원래 걷는 것을, 뛰는 것을 좋아한다. 두 다리를 움직이는 느낌이, 심장이 좀 더 강하게 뛰는 느낌이, 땀이 식으면서 답답한 마음도 같이 증발하는 느낌이 좋아서. 언젠가 책의 제목에 홀려, 한정판 산티아고 엽서세트를 준다는 홍보에 홀려 샀던 “산티아고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그 책. 그렇게 알게 된 순례자의 길 800km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숫자는 전혀 와닿지 않았기에, 엽서로도 만들만큼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원 없이 걸을 수 있고 그 가운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말에 까미노는 어느새 내 버킷리스트가 되어있었다.

10년 넘게 마음에만 품고있던 그 날은 갑자기 찾아왔다. 한 달여의 여유시간이 생긴 8월 21일, 산티아고로 가야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8월 26일 출국인 비행기를 8월 21일에 끊고, 근처 아울렛에서 급한대로 등산화와 배낭을 샀다. 이렇게 준비하나 없이 갈 줄은 몰랐지만 걷는데는 자신있었으니, 그것 하나 믿고 출발했다.

그렇게 준비 없이 갔던 길은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아 몸도 마음도 지쳐 여러번 눈물을 쏟아야했다. 그렇지만 차츰 길도 배낭도 익숙해졌고 만족스러울 만큼씩 걷다보니 계획보다 5일 앞당겨 순례길을 완주했다.

까미노에서 내 일정과, 나한테 맞는 속도로 걷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도 뒤에 남겨두고 걸어가야했다. 그리고 일정상 그들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렌느 할머니, 마리에뜨 할머니, 브라이언 아저씨는 약속도 안 했음에도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마주쳤고, 완주 한 날 산티아고 대성당 한 가운데서 다시 한 번 재회를 했다. 출발전부터, ‘내게 편한 삶의 속도로 살다가는 세상을 나 홀로 걷는 것은 아닐까’ 하는 외로움에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 세상 어딘가엔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으며 만나게 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하기보단, 내게 맞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도 된다는 생각에 한결 자유로워졌다.

모든 여정을 마치고 공항을 가려 일어서는 때, 산티아고 대성당의 종소리가 울렸고, 문득 매일 보고 따라갔던 노란 화살표가 생각났다. 매일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헷갈리거나 갈림길이 있을때는 어김없이 노란 화살표가 내 갈 길을 가르쳐 줬는데, 이제는 화살표 없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와 동시에, 순례길에서 뵈었던 아저씨께서 완주 소식을 듣고 보내 주신 메일이 떠올랐다. 그렇지, 이제 내 눈에 보이는 노란 화살표는 없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든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든 내 삶의 화살표가 되어주리라. 그 사실에 눈물을 거두고 다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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